에이전트 AI 시대, 내 생각까지 맡기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글을 쓸 때도, 업무 자료를 정리할 때도 GPT를 먼저 열게 된다. 아이들 교육 자료를 만들 때도, 정보보안 자격증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재무와 투자에 관한 고민, 블로그 운영까지 AI는 어느새 내 일상에서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편리하다. 글을 혼자 붙들고 몇 시간씩 고치던 때와 비교하면 작업 시간이 크게 줄었다. 초안을 만들고, 문장을 다듬고, 부족한 부분을 찾는 과정이 빨라졌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예전보다 글을 잘 쓰게 된 걸까, 아니면 글 쓰는 수고를 AI에 넘기는 데 익숙해진 걸까?

ai글과 나의글

문장은 좋아졌는데, 내 생각도 좋아졌을까

AI를 쓰면 글이 금방 정돈된다. 논리적인 순서를 잡아 주고, 어색한 표현을 고치고, 내가 놓친 관점을 제안하기도 한다. 다만 잘 정리된 글과 내 생각이 담긴 글은 같지 않다.

가장 먼저 걸리는 건 사실관계다. AI 초안에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그럴듯하게 섞이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근거가 마치 있는 것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문장이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받아들이면 틀린 정보가 그대로 내 글이 된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사실 확인 바깥에 있다. 나는 AI에게 내가 실제로 겪은 일과 느낌을 재료로 준다. 그런데 AI가 그 경험을 글로 풀어 쓰는 순간, 내 말투도 내 온도도 아닌 문장이 나온다. 이 결과는 일정하지 않다. 어떤 때는 내가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오히려 잘 짚어 줘서 글이 좋아진다. 어떤 때는 같은 경험인데 거창하고 감상적인 문장으로 바뀌어서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읽힌다. 문제는 두 경우 모두 문장이 매끄럽다는 점이다. 매끄러움만으로는 좋아진 건지 달라진 건지 구분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읽고 “이건 내 말이다, 아니다”를 가려내야 한다.

Edward Reads를 운영하면서 이 부분이 특히 신경 쓰인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내용을 보기 좋게 요약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에 공감했고 어디가 아쉬웠는지 기록하고 싶어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AI가 대신 경험해 줄 수 없다. 그 부분이 빠지면 아무리 완성도 높은 문장도 내 독서 에세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래서 AI가 쓴 초안은 그대로 올리지 않는다. 틀린 내용을 걸러 내고, 내 의도와 맞지 않는 표현을 고치고, 필요 없는 문장은 지운다. 때로는 고치는 것보다 처음부터 내 문장으로 다시 쓰는 편이 빠르다. 적어도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내가 알고 있어야 하니까.

이제는 답변을 넘어 행동까지 대신한다

지금까지 AI를 글쓰기와 자료 정리에 주로 썼다면, 앞으로는 다른 장면이 늘어날 것이다. 에이전트 AI는 목표를 받아 여러 단계를 수행하고, 예약이나 결제 같은 실제 행동까지 처리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반복되는 일을 맡기고 정말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반갑다.

하지만 추천과 실행은 다르다. 상품을 추천받는 건 검토할 기회를 얻는 일이다. 그 상품을 결제하는 건 돈이 움직이는 일이다. 추천이 틀렸다면 다시 판단하면 되지만, 실행된 행동은 되돌리기 어렵고 비용이 따를 수 있다.

그래서 선을 이렇게 긋는다. 자료를 찾고 비교하고 초안을 쓰는 일은 맡긴다. 돈이 나가거나 외부에 중요한 내용이 전달되는 일은 실행 전에 내가 직접 확인하고 승인한다. 투자나 업무에 관한 제안도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따르지 않고, 근거와 내 상황을 함께 따져 본다. AI의 답을 곧바로 내 판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특별할 것 없는 이 원칙이 에이전트 시대에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기술은 계속 좋아질 테고, 지금은 사람이 확인해야 하는 일도 언젠가 안정적으로 자동화될 것이다. 그래도 기술이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맡기기로 정한 일은 다른 문제다. 그 경계는 내가 정한다.

투박하더라도 내 문장으로

AI를 쓰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직접 읽고, 고민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일부러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만큼은 이 글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한 번 더 확인할 것이다. 문장이 조금 투박해도 내 생각이 담겨 있는 쪽을 고르겠다.

AI가 다듬어 준 내 경험담을 읽고 “이건 내가 쓴 것 같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의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 불편함이 아직 내가 내 글의 주인이라는 신호일 테니까.